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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자료

조선의 첫 서양의사, 알렌의 일생

by allformission 2025. 4. 16.

조선의 첫 서양의사, 알렌의 일생

호러스 뉴턴 알렌(안련)

Horace Newton Allen (1858–1932)

 

이 내용을 통해 우리는 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해야 함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료를 남깁니다

 

“조선의 첫 서양의사, 그러나 순수한 선교사였을까?”


✅ 공(功) – 조선의 개방과 의료 선교의 선구자

1. 서양 의학의 전래와 정착

  • 1885년 제중원 설립 →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 의학교육 병행 → 한국인 의료인 양성의 기초 마련
  • 의료를 통해 선교적 접근이 가능해짐

2. 외교와 개방의 연결자

  • 갑신정변 당시 민영익 치료 → 고종의 신임 획득
  • 미국과 조선 사이의 외교 가교 역할 수행
  • 미국 공사관 설립 주도, 근대 외교의 토대 마련

3. 근대화의 도입자

  • 조선에 서양 문화, 교육, 기술을 자연스럽게 도입
  • 단순한 선교가 아닌, 근대화의 매개자로 기능

❌ 실(過) – 외교 속에 감춰진 복잡한 의도

1. 선교보다 외교에 집중한 활동

  • 초기 의료 선교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외교 활동 비중이 커짐
  • 미국 정부의 입장을 조선에 대변하며, 미국 국익 중심 사고 지적됨

 

💬 일부 역사학자 평:
“알렌은 선교사로 포장된 외교관이었다. 조선을 위해 일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미국의 영향력을 조선에 심는 역할도 했다.”

 

 

 

2. 을사늑약과 무력한 중재

  • 일본의 침략 과정에서 조선을 실질적으로 방어하지 못함
  • 미국의 태프트-가쓰라 밀약(1905)을 묵인하거나 눈감았다는 비판 있음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대신, 미국은 필리핀을 인정받는 밀약
 알렌은 이 밀약의 정황을 알면서도 침묵했다는 의혹이 있음



3. 조선의 내부 사정을 외국에 보고

  •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조선 왕실과 내부 정세를 본국에 보고
  • 일부는 “선교사의 탈을 쓴 첩보원”이라는 비판도 존재

 역사적 평가 – 두 시선의 교차

긍정적 시각                                                                              비판적 시각
조선에 서양문물을 도입한 개척자 선교보다 미국의 국익을 더 고려한 외교관
의료를 통해 조선 백성의 삶에 기여 일본 침략에 소극적이었고, 대응 실패
교육과 제도 도입으로 근대화 기여 외세 개입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

 마무리 정리

알렌은 분명히 조선에 많은 유익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미국의 외교 정책과 정치적 계산의 일환으로 움직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를 무조건 영웅시하기보다는,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가 한 일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 성숙한 역사 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호러스 뉴턴 알렌(안련) 일생

 

1. 미국 오하이오에서 조선까지

알렌은 1858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신학과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장로교 선교사로 임명되어, 당시 폐쇄적인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파송됩니다.
1884년, 26세의 나이로 조선 땅을 밟은 알렌은 조선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2. 갑신정변과 민영익 치료 – 조선의 문을 열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바로 1884년 ‘갑신정변’ 사건입니다.
당시 피습을 당한 고관 민영익을 치료하면서, 조선 왕실로부터 큰 신뢰를 얻게 됩니다.
알렌은 서양 의학으로 중한 부상을 치료했고, 이는 조선 최초의 서양 의료에 대한 관심을 끌어들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제중원(濟衆院)의 설립 –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

민영익 치료 이후, 고종의 지지로 **1885년 제중원(濟衆院)**을 설립합니다.
이는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 나중에 세브란스병원의 모태가 됩니다.

알렌은 단순한 의료 행위뿐 아니라, 조선인에게 의학 교육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의술을 가르치며 서양 의학의 전파자가 되었고, 이후 많은 한국인 의사들이 이 시스템을 통해 배출되기 시작합니다.


4. 외교관으로의 변신 – 조미 관계의 가교

알렌은 의료 선교사로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선 정부와 미국 사이의 외교적 가교 역할을 맡으며, 미국 공사관 직원, 외교 고문으로 활동합니다.
그는 미국과 조선의 관계를 강화하며, 근대 조선의 국제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에는 일본의 내정 간섭과 강제적인 외교 개입에 실망하고 결국 조선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5. 은퇴와 마지막 생애

조선을 떠난 알렌은 미국에서 은퇴 후 삶을 보내다가 1932년 생을 마감합니다.
그는 조선에서 선교사, 의사, 교육자, 외교관이라는 네 가지 역할을 수행하며 조선 근대화의 선구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 알렌의 유산

  • 제중원 설립자: 서양 의료의 조선 도입과 교육 시작
  • 조선의 외교사 개척자: 미국과 조선의 외교 창구 역할
  • 조선 근대의 문을 연 사람: 의료와 외교를 통해 조선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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