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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자료

로제타 셔우드 홀의 삶-조선의료선교사

by allformission 2025. 4. 9.

조선을 사랑한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의 삶

 

우리가 먼저 받은 사랑에 대해서 알길 바랍니다

조선 소녀에게 자신의 피부까지도 떼어 준 의료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을 소개해드립니다

1. 들어가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은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봉건 왕조에서 근대 국가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외세의 영향이 점차 커졌고, 서양 선교사들이 의료와 교육을 매개로 조선 땅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조선의 장애인들과 여성들을 위해 헌신한 한 여인이 있습니다. 바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입니다.

그녀는 의사이자 교육자, 선교사로서 조선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길을 열어준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조선 최초의 **맹아학교(시각 및 청각 장애인 교육기관)**를 세워 장애인 복지의 초석을 다진 점은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어린 시절과 소명의 시작

로제타 셔우드 홀은 1865년 5월 31일, 미국 뉴욕주의 엘리자베스타운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선교와 의료에 대한 관심이 깊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뉴욕으로 이주한 후, 여성으로서 드물게 의사의 길을 선택합니다.

여성의 의학 교육이 드물던 시대였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여성 의과대학(Woman’s Medical College of Pennsylvania)**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고, 이후 1887년 선교의 길에 들어섭니다.


3. 조선 입국과 의료 선교 시작

로제타는 1890년 조선으로 파송되어 당시 황해도 해주에서 의료 선교를 시작합니다. 당시 조선은 서양 여의사의 존재 자체가 생소했고, 특히 여성 환자들은 남성 의사를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로제타의 존재는 매우 소중했습니다.

그녀는 조선 여성들에게 건강 교육, 산모 돌봄, 의학 지식 전달 등의 활동을 하며 초기 여성 의료 선교의 중심이 됩니다.


4. 루이스 헨리 홀과의 만남과 결혼

의료 선교를 함께하던 동료인 **루이스 헨리 홀(Louis Henry Hall)**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1892년 결혼합니다. 이후 부부는 평양과 원산, 서울 등지를 오가며 협력 사역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남편 루이스는 1894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로제타는 이 큰 상실 속에서도 조선에 남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조선을 떠나지 않고 사명을 이어간 보기 드문 인물입니다.


5. 조선 최초의 맹아학교 설립

로제타 홀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은 1909년, 조선 최초의 맹아학교인 ‘명신학교’(後의 서울맹학교)를 설립한 것입니다. 그녀는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 사회에 거의 전무하던 개념이었고, 로제타는 장애인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이 학교에 필요한 점자 교재, 수화 교육법, 재활 훈련 등 선진적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금의 특수교육 발전에 초석을 놓았습니다.


6. 아들 셔우드 홀 박사와 가족의 헌신

로제타 홀은 두 자녀를 두었으며, 특히 아들 **셔우드 홀 박사(Sherwood Hall)**도 부모의 뜻을 따라 조선에서 의사이자 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조선에서 결핵 퇴치 운동, 세브란스 병원 설립 지원, 방역 캠페인 등에 헌신하며 한국의 보건의료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이처럼 로제타 홀의 헌신은 한 가족의 선교로 확장되었고, 이는 3대에 걸친 의료 선교사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7. 말년과 귀국

로제타 홀은 일제강점기의 격변기 속에서도 조선에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건강 문제와 나이가 들면서 1933년 미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도 조선의 상황을 알리며 후원 활동을 지속했고, 그녀는 1951년 8월 5일, 향년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생전에 “나는 조선을 떠났지만, 내 심장은 여전히 조선에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8. 그녀의 유산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각장애인 학교, 청각장애 교육기관, 여성 의료 시스템은 로제타 홀의 헌신 위에서 발전해왔습니다. 그녀는 단지 의료인이나 교육자를 넘어, 조선과 한국 사회에 새로운 인권 의식을 심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딴 학교, 기념관, 의료시설 등이 그 흔적을 이어가고 있으며, 매년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학술대회나 행사도 열리고 있습니다.


9. 마치며

한 여성이 조선 땅에 씨앗을 심고 갔습니다.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낯선 이국의 땅에서, 사랑과 믿음으로 병든 이들을 돌보고 배움의 길을 열었습니다.

로제타 셔우드 홀. 그녀는 단순한 선교사나 의사가 아니라, 한 민족의 미래를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사랑과 헌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로제타 홀 기념관을 표시해두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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