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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자료/숨겨진 비밀 -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숨겨진 비밀(3). 미스테리2. 왜 이방교회는 이스라엘에게 눈이 감기었는가?

by allformission 2025. 5. 2.

 

숨겨진 비밀(3)

미스테리2. 왜 이방교회는 이스라엘에게 눈이 감기었는가?

 

 

이스라엘이 예수님에게 눈이 감기게 된 첫 번째 미스테리에 이어 이제 남은 두 번째 미스테리가 있다.

그것은 왜 이방인 교회는 이스라엘에게 눈이 감기어져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1세기까지 교회는 유대 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이스라엘과의 연속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1, 2차 유대인 저항운동을 거치면서 교회와 이스라엘 간의 연속성은 단절되기 시작하였다.

랍비와 회당 중심의 유대교로 발전한 이스라엘은 예수님에게 눈이 가리어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교회는 이러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 유대교에 대하여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집에 함께 속해 있다는 인식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버린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교회가 새 이스라엘이라는 인식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서 새 이스라엘

갈라디아서 6:16에서 사도바울은 1세기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이스라엘'(Israel of God)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1세기 교회의 상황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룬 상태, 즉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집, 다윗의 장막을 말한다.

사도들과 유대인 성도들이 리더십을 가진 1세기 초대교회에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교회 안의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이스라엘과 친밀한 영적 연대감을 갖고 있었다.

 

할례와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와(또는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갈 6:15~16)

 

 이와 같이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인 다윗의 장막에 함께 속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2세기 이후의 교회는 AD 70년과 132년경의 두 차례의 유대인 저항운동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거부하는 유대교 공동체에 대하여 교회와 한 몸을 이루는 지체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자신을 이스라엘을 대신한 새 이스라엘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바울이 언급한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는 하나님의 집을 의미하는 반면, ‘새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배제한 이방인만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새 이스라엘이란 개념을 가진 하나님의 집, 교회는 다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되어 아모서 911절에서 언급한 마지막 때인 그 날까지 그 무너진 장막의 회복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새 언약이란 말은 있어도 어느 곳에도 새 이스라엘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경륜에 무지한 이방인 교회가 만들어낸 거짓된 개념이다.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 언약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백성을 새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새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배척하는 한 그 뿌리를 잃어버리게 되며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개념임이 분명하다.

 사도바울을 이것에 대하여 복음을 위하여 이스라엘이 이방인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된 자가 되었으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다고 말한다.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니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느니라
(롬11:28~29)


그러나 지금도 얼마나 많은 교회의 설교 중에 예수 믿는 성도들을 새 언약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 새 이스라엘로 언급하고 있는가? 를 생각해보라.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하였다는 이러한 인식은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 2세기 이후 4세기까지 초기 교부들의 저술에서 이러한 인식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세기에 활동한 교부 순교자 저스틴(Justin)은 그의 저서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이스라엘에 속한 것들이 이제는 기독교인의 소유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3세기의 교부 오리겐(Origen)은 유대인들이 받고 있는 재앙은 그들이 사악한 민족이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극심한 징벌을 받고 있는 것은 예수님에게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4세기의 교부 제롬(Jerome)과 어거스틴(Augustine)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마태복음 21:18~22)를 유대 민족에게 적용하여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영원토록 저주받은 백성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4세기말에 활동한 황금 입을 가진 설교자로 불리는 크리소스톰(Chrysostom)회당은 도적의 소굴이며 들짐승들의 거처이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배를 위해 살고 있다고 유대 민족을 모욕하는 설교를 하였다.

 이러한 저주는 이방인선교의 중심이며 교회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안디옥교회(사도행전 11:26)의 장로 크리소스톰의 입술에서 나온 말이었다. 초기 교부들과 이방인 교회의 생각은 이처럼 비유대교적인 것에서 점차 반유대교적인 것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이 본격적으로 형성하게 되었다.

 대체신학은 교회와 유대인을 공식적으로 분리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방교회가 유대인을 대신한다는 대체신학은 로마제국의 기독교공인 시기에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반유대교의 생각을 가지고 있던 초대교회 교부들에게 유대교의 기초이며 유대인의 신앙적 규범으로 가득 찬 구약성경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 마르시온(Marcion) 같은 자는 구약성경을 아예 교회의 정경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르시온의 극단적인 주장은 당시에도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반유대교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교회 자체의 존재 이유를 제공해 주는 구약성경으로부터 완전히 단절시킬 수는 없었다.

 

따라서 교부들이 그 대안으로 찾은 방법이 구약성경에 대한 알레고리적 해석이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시기인 4세기의 대표적인 교부 어거스틴(Augustine) 성경의 언어는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은유적,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2세기에 활동한 교부 이레니우스(Irenaeus)이론을 받아들였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관점을 상징적으로 보았고 교회가 새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성경해석으로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을 상징으로 보면서 이방인 성도로 이루어진 교회를 새 이스라엘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대체신학이 대두한 것이다.

 어거스틴의 유명한 <신국론>-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교회가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종교개혁 후의 개신교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AD 325년 개최된 니케아공의회는 로마가톨릭 교회의 방식으로 부활절 등 교회절기를 제정하였고, 유월절, 장막절 등 성경의 절기를 지키는 유대인과 유대교를 교회에서 분리하였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유대교와 유대인을 추방한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뿌리인 유대교와 이스라엘로부터 교회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이미 로마서에서 1세기에 이방인교회가 그 뿌리인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고하거나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롬 11:17~18)

 

 그러나 돌감람나무인 이방인교회는 사도바울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고하고 교만하여져서 참감람나무의 원 뿌리인 이스라엘을 배척하였고 성경적 뿌리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하였다.

 그 결과 교회의 뿌리인 성경적 용어들인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새 이스라엘, 토라(Tora)’는 ‘모세오경’으로, 타나크(Tanak)는 구약성경으로, 메시아 예슈아(Yeshua)’는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어 불리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인이 없는 다윗의 장막은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이방인들의 기도와 예배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와 예배를 향한 다윗의 열정을 배우는 수단의 개념으로 사용될 뿐이었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변화하지 않은 반유대주의

 

 교회의 유대교에 대한 적대감(anti-Judaism)은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되어 유럽 전역에서 반유대주의(anti-Semitism)로 발전하였다.

 1517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교회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으로 개혁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교회의 관점은 개혁되지도 변화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하였다는 입장이 지속되었다.

 그 영향으로 반유대주의가 유럽을 휩쓸었고 스페인 등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종교재판을 당하고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쫒겨났다.

 19세기말에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들이 살던(600만명) 러시아에서는 포그롬(pogrom)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였고, 20세기에 들어서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의 나찌는 유럽 전 지역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색출하여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감옥으로 추방하였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가스실에서 독가스로 학살하는 비극을 가져왔다.

폴란드에 소재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대인들은 ‘노동이 자유롭게 한다’는 나찌의 거짓말에 속아 수용소에 들어온 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독가스로 학살되었다.

 

 이 엄청난 비극은 교회가 가진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무지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되어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는 신명기 말씀(32:21)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런 유대인의 고통과 이스라엘의 대환란 가운데 이스라엘 국가가 1948년에 살아났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와 같이 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서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살아나 예수님의 품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고토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난 날 역사 속에서 받은 박해와 상처로 기독교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분노와 적대감으로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다윗의 장막이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있다.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교회의 뿌리인 성경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님을 탄생시킨 민족 유대인에 대하여 일어난 이 슬픈 비극의 역사는 유대인의 죄와 잘못으로만 돌릴 수 없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한편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요, 한편은 이방인 교회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첫째, 어리석은 이방민족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왔지만,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에 무지하여 교회가 자기 스스로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이라고 하는 어리석은 가르침이다. 교회사에서 존경받는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회가 행한 죄악에 대하여 하늘에서 참회하고 있을 것이다.

둘째, 이 일을 이방인교회의 어리석음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방 민족이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왔지만 유대인을 배척하고 자신이 이스라엘을 대체한 새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고 유대인을 학대하는 일이 발생한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미스테리였다. 왜냐하면 이 일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경륜에 속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신명기 말씀을 성취한 하나님의 미스테리

이 미스테리에 대해 신명기 3221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였고, 바울은 이 말씀을 로마서 1019절에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이방인)로 그들(이스라엘)에게 시기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이방인)으로
그들(이스라엘)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신 32:21)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롬 10:19)

 

 이방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경외하게 되니 이스라엘이 시기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민족이라고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이방인들에게 이스라엘이 짓밟히게 되어 유대인의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난 날 역사 속에서 교회로부터 받은 박해와 상처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였다.

 현재도 유럽 곳곳에서 반유대주의가 역사하여 유대인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이 3400년 전에 모세를 통해 계시된 신명기 32장 말씀은 지난날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그러나 유대인에 대한 이방인교회의 이러한 태도가 신명기 말씀에 예언된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이방인교회의 잘못된 생각과 어리석은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이방인교회의 무지와 교만에서 온 죄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보다 더 심하게 유대인을 학대한 이방인과 교회에 대하여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책망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슥 1:14~15)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조금 노하였거늘 하나님의 경륜에 무지한 어리석은 이방인들은 힘을 내어 이스라엘과 유대인에게 고난을 더 하였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히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은혜를 입었는데도 이스라엘에 대한 긍휼과 감사함은커녕 이스라엘을 심하게 학대하고 고난을 더한 것이다. 다음의 의문은 그러면 하나님의 경륜으로 된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어떻게 이방인이 구원을 얻는 결과가 되었는가?’ 라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숨겨진 비밀- 담장을 넘은 가지라는 주제가 기다리고 있다.

 

다음 8월호에는 숨겨진 비밀- 담장을 넘는 가지: 요셉을 향한 모세와 야곱의 축복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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