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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선교)/T국(소아시아)

58번째 아룀편지

by allformission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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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세례 받을 톨가의 노래    
읽어야할 책이 있는데 눈이 피로할 때는 TTS(TextToSpeech) 기계음이 읽어주는 책을 듣습니다. 

그러다 문뜩 ‘소리’라는 것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성우가 읽어주는 책과 기계음이 읽어내는 소리는 감동이 당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건 ‘Soul(영혼)이 있는 말’, ‘Soul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더 깊이 묵상했던 것은 ‘노래는 참으로 영적인 활동이다’였습니다. 우리의 찬양이 얼마나 신기한지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소리가 입에서 ‘구별되는 소리-말’로 발화할 때 의미를 부여하고 전달하여 소통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왜 소리만 존재하지 않게 하시고 ‘노래’라는 것을 만드셨을까? 그리고 천사와 인간의 찬양(노래)의 차이는 무엇일까?


음율에 놓여진 말에는 마음과 영과 혼 그리고 감정이 옷 입혀지는 것이라고 새삼 깨달았다고 할까요? 이전에 저는 말씀 선포와 가르침 사역만 강조하는 사역을 해왔는데, 최근들어 주를 위한 노래에 흠뻑 젖는 시간을 종종 갖곤 합니다.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이지만 ‘음율에 놓여진 말은 참으로 영적인 활동’이었습니다. 만약에 소리가 보이는 것 물감이라면 노래할 때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창조적 색을 입히는 활동’같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노래하듯 선포하시진 않았을까? 상상해보건대, 회색으로 보였던 사과가 비로소 빨간색이라고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구구절절이 늘어놓은 이유는 이러한 묵상 중에 이제 곧 세례를 받을 톨가의 찬양을 통해서 찬양에 대한 제 개념이 바뀌게 되고 하나님을 더 느끼게 되며, 성령 하나님이 톨가에게 일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생명, 내가 살아있음을 더 느끼는 거 같아!’ 라고 말하는 그 청년의 찬양에서 Soul과 Spirit을 느끼게 되어 적잖이 감동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찬양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음율까지도 모두 플랫(평평하게)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이 있는 음치이고 박치입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천사도 살펴보기 원하고 부러워할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주님께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가장 우렁차게 영혼에서부터 쏟아냅니다. ‘첫 사랑’의 모습입니다. 해와 같이 빛나는 30살의 청년의 얼굴에서는 천국에서 주를 마주한 어린 아이의 얼굴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찬양인도자가 서로 바라보며 찬양하라 하는데 남사스러워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함께 찬양하다가 보면 이 청년의 노래에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3:16)
다윗의 군대 지휘관과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는 이러하니라(역대상25:1)

신령한 노래, 아버지의 말씀을 대언하는 노래. 같은 찬양을 부르면서 아버지의 음성을 듣습니다. ‘첫 사랑’!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은 음율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임을 그리고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임을 이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로 다시 살기를 고백하고 결단하는 청년을 통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세례 학습을 4주 동안 마치고 이번주 토요일에 세례식을 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씻겨지고 정결케 되었고 예수와 죽고 예수로 다시 사는 거듭났음을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는 그 세례식에서 모두가 큰 은혜를 경험하도록.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시도록 아룀 부탁드립니다.

4/14창 사역
4살부터 14살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방과 후 학교를 시작합니다. 9월 21일(수)에 시작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저희에게 맞는 옷과 신분을 주신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많이 미흡하고 부족하지만 ‘사랑’만 남게 하는 학교가 되도록 아룀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창세기 6~9장을 읽으며 노아의 삶을 묵상하다가 ‘노아는 어떻게 이 지루한 배 만드는 일을 120년이나 묵묵히 해냈을까?’ 이 질문에 우리 첫째 딸이 예배 중에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성경에는 배 만드는 방법을 한번에 다 설명 해 놓았지만, 매일 매일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노아는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언제 홍수가 올지 심판이 올지 모르고, 심판을 취소하셔서 방주 건조가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있어도 노아에겐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일 주의 음성을 듣고 동행했던 노아는 하루 하루가 은혜였고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하는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나 다만, 어린아이들 포함하여 우리들도 주의 음성 듣고 따라가는 어린양들이 되길 원합니다.

여러분들도 매일 주와 동행하는 기쁨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찬양하며 신령한 노래하며 두렵고 떨리는 심판을 이기게 하는 구원의 복음 주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시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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